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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선한 양심과 구원의 관계? (ft 간음한 여인의 심판 그리고 예수님이 땅에 적은 글)

성경은 선한 양심과 구원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인의 심판을 통해 양심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지 살펴보자. 

 

 

요한복음 8:1-11

8:1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
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8: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8: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8: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8: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8:9 저희가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8: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유대인들 몇몇이 예수를 곤란하게 만들기 위해 어려운 질문을 낸다. 간음하여 잡혀온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율법에 의하면 그들은 여인을 돌로 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인을 이용하여 예수를 시험한다. 돌로 치라고 하면, 사랑을 베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중적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일 있는 찬스가 생기는 것이다. 여인을 용서하면 예수는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명언을 던진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멋진 장면이고 통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요한복음을 요한의 목적은 예수의 언별술을 위해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예수가 정확히 누구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기록한 저서이다. , 본문에서 우리는 지혜롭게 말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닌, 예수가 누구인지 뽑아내야 한다. 그것이 요한의 진정한 의도이다.

 

요한복음 20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기록한 이유, 목적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손가락을 이용해서 글을 기록이 나온다.

5:5

5:5 때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그리고 모세가 받은 십계명이 바로 두번째 기록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땅에 무엇인가를 2 적었다. 내용에 대해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하나님께서 2 손가락으로 기록하셨다는 것을 있다. 여인의 죄와 이스라엘의 죄가 너무도 유사하다. 이스라엘 역시 영적인 간음을 범하였다.

 

출애굽기 32 19

진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추는 것들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손에서 판들을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다시 하나님께서 다시 직접 손으로 십계명을 쓰신다.

 

출애굽기 3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있던 말을 내가 판에 쓰리니

 

영적 간음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노여워하며 진멸하시려 모세가 중재자 역할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위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셨듯이 모세가 역할을 감당한다. 모세는 후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출애굽기 32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현장에서 구원받은 자는 누구인가? 바로 간음한 여인 하나 뿐이다. 예수가 구원한 것은 바로 간음한 여인이며,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땅에 오셔서 죽은 이유이다. 율법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십계명 앞에서 그가 직접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의를 사랑으로 실천한 것이다.

 

 

양심과 구원의 관계

요한복음 8:9에는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라는 표현이 있다 (개역한글) 하지만, NIV NASB에는 양심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KJV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And they which heard it, being convicted by their own conscience”. 바꿔 해석하면 예수를 공격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양심(?)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구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죄를 명백히 범한 간음한 여인만이 죄사함을 예수님께 받았다.  선한 양심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죄를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죄를 선별하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내가 죄인임을 온세상에 까발려져 부끄러움을 당한 여인이 현장에서 가장 축복받은 사람이 것이다. 요한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요한복음 20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기록한 이유, 목적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이 내용은 한몸교회 이수용 목사의 메세지를 나의 버전으로 재해석 했음을 알려드린다. 

https://youtu.be/sR6ema3xyi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