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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사마리아 여인 vs 니고데모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 전에 바로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만남이 있었다. 캐릭터는 정말 완전히 상반된 인생을 살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인

  • 부도덕한 여자 (남편이 5명이 있었고, 지금 사는 남자도 남편이 아님)
  • 비천한 여자 (물이 필요하여 우물 물을 길러 옴)
  • 이방인 (유대인들이 경멸하는 사람)
  • 예수님이 직접 여인을 찾아가서 만남

  

니고데모

  • 율법을 철저히 지킨 바리새인 (더불어, 예수님께 공손한 태도로 접근함)
  •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 (정치적인 파워가 막강했음)
  • 정통 유대인
  •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야밤에 몰래 찾아감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는 안스러울 정도로 니고데모를 쪼는 스타일의 대화였다. 반면 사마리아 여인은 반대로 예수님을 비꼬우면서 이야기하는 스타일이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대화 스타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3:10)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대화 스타일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4:9)

 

요한은 사마리아 여인을 의도적으로 니고데모 이야기 뒷편에 부쳤다. , 어떠한 능력과 행동으로는 구원에 이를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더불어, 구원은 현재 나의 상태가 얼마나 높고, 낮음 과도 관계없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다. 구원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하기 위해서 요한은 사건을 이어서 요한복음에 나열한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구원받을 만한 근거와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구원하였다.

 

우리의 현재 상태가 니고데모 쪽에 가까운가? 아니면 사마리아 여인 쪽에 가까운가? 중요한 사실은 어느 쪽이든 관계없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필요성 조차 알지 못했던 상태였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그녀를 찾아가셨다. 니고데모 역시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찾아갔지만, 그가 자신을 구원할 메시야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찾아서 선택하였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의 인식의 순서라는 측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가 태초에 이미 선택되었다고 말씀하고 계시다. 사도 바울은 이를 아래와 같이 표현하였다.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15)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의 수고와 노력이 아닌, 나의 죽음과 그를 믿는 부활의 믿음으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복음은 높은 지위와 권력을 가진 니고데모에게도 전해진다. 또한 복음은 낮고 비천한 지위에 있는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전해진다. 그것이 놀라운 기독교의 가치이다. 

 

 

이 포스팅은 한몸 교회 이수용 목사의 설교를 나의 버전으로 재해석했음을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