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수 그리스도

요단강을 건너는 예수 (ft. 나사로의 죽음)

유대 땅 베다니는 예루살렘 근처에 있다. 요한복음 11장의 마리아,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가 살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또 다른 베다니는 침례 요한이 침례를 주던 요단강 저편 베다니이다. 나사로가 죽음을 맞이하였을 때, 나사로는 예루살렘 근처, 즉 유대 땅의 베다니에 있었고, 예수님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 있었다.  

 

요한복음10장 그리고 11장에서 예수님의 이동 경로는 아래와 같다. 첫번째, 요단강 건너편 요한이 세례를 주던 베다니 (건너편이라는 단어가 더 헷갈리는 듯하다). 그리고 나사로가 있던 유대 땅 베다니,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죽음을 듣고 다시 유대 (베다니)로 가신다. 그리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신다. 바로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이틀을 더 지체하시고 나사로가 있는 유대 베다니로 가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10: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11:1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요한복음 1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 유대로 다시 가자" 라고 할때, 유대 땅 베다니를 의미한 것이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요단강을 건넜다는 말이 나오지 않지만, 이름이 다른 두 베다니를 왔다 갔다하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만나기 위해 다시 요단강을 건너신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닌가?

 

 

 

여호수아 4장 23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바로 여호수아와 12지파가 함께 건넜던 요단강이다. 그리고 첫 전쟁터인 여리고, 정복할 수 없을 듯한 곳을 이스라엘 백성은 얻게 된다. 죽음이라는 정복할 수 없는 문제를 예수님은 요단강을 건너 해결하신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여호수아를 따라한 것이 아니다. 여호수아가 바로 구약에서의 예수의 그림자였고, 예수님은 이를 동일하게 재현하신 것이다. 나사로를 찾아가기 전, 예수님이 이틀을 요단 건너편 베다니에 더 유하였다는 것은 바로 3일째 죽음을 의미하고, 그리고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병은, 죽음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나기 위한 것이었다. 제자들에게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는 능력이 예수에게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셨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따지듯이 묻는다. "예수님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오빠가 안 죽을 수도 있었잖아요. 왜 이틀이나 더 늦게 오셨어요. 너무도 속상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매하게 말한다.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마리아와 마르다의 믿음은 아주 훌륭하였다. 그들에게 예수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이를 믿었고, 예수가 무엇이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도 알았다.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아나이다
11: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의 무덤 앞의 돌을 옮기라 하였을 때의 반응은 그들이 알고 있고, 믿었던 것과는 달랐다. 

 

11: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11: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그들이 알고 있는 예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그가 무엇이든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구하면 주실 줄 안다. 하지만, 이미 죽음으로 끝난 인생은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예수는, 아니 내가 믿고 있는 예수는 과연 지금 어디쯤 있을까 고민해봐야 한다. 예수의 가치는 바로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알아도 대강 아는 정도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에 권세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를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 이상, 우리의 생각 이상을 넘나드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가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죽음이 우리의 인생 앞을 가로막아도, 그것 뒤에 계신 예수님, 죽음을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 신앙, 그것을 오늘도 사모해본다. 나사로는 죽음에서 생명을 다시 얻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죽었다. 그는 2번째 인생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성경은 이를 담고 있지 않지만, 분명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