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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아들을 먼저 보낸 아비의 연가 - 아들아, 씨유 인 헤븐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떠나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적은 이동원 목사의 저서, "아들아, 씨유 인 헤븐"은 부모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을 솔직한 마음으로 적어냈다.


책의 전반부는 이동원 목사의 둘째 아들에 대한 회상이며, 후반부에는 이동원 목사가 아들을 잃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그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은 책들에 대한 묵상이다. 오늘은 이 후반부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엘리엇 (Elisabeth Elliot)은 짐 엘리엇의 아내였다. 짐 엘리엇 (Jim Elliot)은 에콰도르에서 순교한 선교사이다. 엘리자베스는 남편을 잃고 다시 재혼하였지만, 그 재혼한 남편과도 사별하게 된다. 그녀는 이러한 고통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고통은 헛되지 않다. 하나님의 임재가 자신의 현재 상황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고통이 자신을 진정한 피난처로 떠밀어주었다. 이 고통은 세상을 살다보면 적어도 한번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불가사의이다. 이 고통 가운데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물을 수 있다. 인간이 겪는 참담한 데이터들을 보고도 창조주인 그를 믿을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러한 고통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더 깊게 경험하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바흐, 톨스토이, 카뮈 등은 일찍부터 고아가 되었으며, 그들은 이러한 고통 가운데에서 최고의 절정의 예술을 만들어내었다. 인류는 종말적 위기를 겪은 후에 비로서 창조적인 사상가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었다. 전쟁 후, 고통을 겪은 독일과 일본이 놀라운 문명의 발전을 겪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창조적인 반응과 온전한 성숙이다.


C. S Lewis는 그가 겪은 고통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그 분의 부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그 분은 우리가 번성할 때 사령관처럼 군림하시다가, 환난의 때에는 이토록 도움을 주시는 데 인색한 것인가?"

이러한 회의적인 태도 역시 우리의 성숙중 하나의 과정임을 기억하자. 고통 없이는 깊은 영적 세계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통을 피했다면, 우리에게 고통은 피해야 할 과제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최고의 고통을 피하지 않았다.

<신정론 논쟁> 책은 고통과 악에 대해서 5가지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 고전적 관점: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적 섭리의 틀 안에서 모든 악과 고통이 허락된다. 인간의 자유 역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예속되어 있다.


- 몰리나주의 관점: 하나님이 인간에게 독립적인 자유를 허용하시며, 상황에 따라 악을 선용하신다는 입장이다.

- 열린 유신론 관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신 이상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위기 때마다 협력한다는 입장이다.

- 본질적 케노시스 관점: 하나님이 인간사에 개입하지 않고, 자신을 비우신다는 입장이다.

- 회의적 유신론 관점: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운 난제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포기하시고, 오늘의 현실적 전망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만을 요청하는 입장이다.

4, 5번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에, 복음적인 관점은 아니다. 이동원 목사는 열린 유신론의 관점에서 고통과 악을 해석하는 것이 본인에게 가장 잘 설득되어진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의 섭리중 어떤 것들은 이미 창세전에 정해져 있으나, 다른 일들은 미래가 정해지지 않고 열려 있다는 해석이다. 하나님이 열려 있는 미래가 어떤 사람의 뜻에 합하면, 그 분은 그 미래를 정하고, 우리를 그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조지 맥도널드 (George Macdonald)는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의 고난을 면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고난이 자신의 고난과 같은 것이 되기 위해 죽기까지 고난 받으셨다." 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의 필요를 따르기 보다, 우리 자신의 것을 주장한다는 것은 우리가 피조물임을 잊었다는 증거이다. 우리의 할일은 우리가 주도해야 하는 존재가 아닌, 반응해야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선택은 결국 보다 나은 반응을 할 수 있는 자유의 선택이다.

이외에도 죽음과 고통에 대한 묵상을 이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죽음을 우리에게 언젠가 다가오는 이벤트이다. 그 앞에서 신음하며, 아파하고, 울부짓을 수도 있다. 또한 어렵지만, 작은 소망이라는 것을 붙잡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낼 수도 있다. 이 땅에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행위중 하나가 바로 상을 당한 한 영혼과 함께 울어주고, 격려해주는 일이 아닌가 싶다. 죽음으로 먼저 떠나보낸 남은 자들이 하는 공통적인 고백이 있다. 바로, 이제 천국이 멀게 느껴지지 않고, 이웃집처럼 가까워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