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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다들 이불 개고 밥 먹어?

   Boney M Rivers of Babylon이라는 유명한 팝송의 멜로디를 따서 다들 이불 개고 먹어 부르던 때를 기억하는가? 개그맨 황기순 씨가 패러디 했던 원곡은 시편 137편을 따서 만들어진 노래이다. 다들 이불 개고 먹어는 By the rivers of Babylon 매칭되는 어구이다.

 

Boney M 노래 Rivers of Babylon 아래와 같이 시작된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There the wicked
Carried us away in captivity
Required from us a song
Now how shall we sing the Lord's song in a strange land?

 

Let the words of our mouth and the meditations of our heart be acceptable in thy sight here tonight

 

한글로 번역하는 것보다, 시편 137장을 읽어보도록 하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 기억하며 울었도다

2. (생략)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Rivers of Babylon

 

유명한 팝송은 사람들을 흥이 나게 했고, 빠른 경쾌한 음악으로 인해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었다. 하지만, 성경에 담겨진 의미는 조금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서 노예 생활을 했던 서러움을 묘사한 시이다. 어쩌면 노래를 부른 Boney M 시편 137편의 서러움을 노래로 표현했지만, 마지막 소절인 시편 19:14 비중을 두었기에 있게 부를 있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왜냐하면 결국 포로에서 해방하실 구속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시편 19:14절은 아래와 같다.

 

Let the words of my mouth, and the meditation of my heart, be acceptable in thy sight, O Lord, my strength, and my redeemer.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있었던 선지자이며, 유다의 멸망도 함께 예언한다. 호세아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 당한다.  BC 586년에 유다 역시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로 끌려간다. 시편 139편은 바벨론에게 처참하게 멸망당 , 포로로 끌려가서 부른 노래이다. 시편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심판과 경고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경고를 무시한다면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이후에 통곡하게 것을 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6절에 나오는 인애의 성경 원어는 “he-sed/헷세드이다. 호세아 6:6 우리가 물질적인 것보다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하지만, 헷세드는 결코 마음과 정성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헷세드는 Mercy로 표현되어 있다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돈을 준비하여 헌금을 하시곤 하셨다. 돈이 없으면 돈을 다림질해서 준비하셨었다. 이러한 마음 가짐은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헷세드는 이상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당시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아주 철저했다는 것이다. 예배 드릴 구약에서 명시된 모든 물품과 행위를 철저히 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벽히 준비된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악함을 호세아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호세아6: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예배하는 것이 바른 예배인가? 우리는 고민해봐야 한다. 그것은 바로 6절에 나오는 헷세드(인애) 정확히 이해하면 된다. 햇세드의 정확한 뜻은 인간의 언어로 정확하게 표현할 없는 단어이다. 한국어에서는 헷세드를 자비, 긍휼, 인애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호세아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헷세드의 의미와 조건

1.       이미 성립된 계약 관계

2.       실천적 의미

3.       강한자가 약한자에게 베푸는 행위

4.       자발적 행위

 

우리 말의 인애, 자비, 긍휼로는 헷세드를 정확하게 표현할 없다. 이유는 헷세드의 두번째 의미와 조건인 실천적 의미 우리 단어들에서는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 단순히, 내가 측은하게 누군가를 생각하거나, 아무개에 대해서 긍휼한 마음을 가진 것만으로는 헷세드라 말할 없다. , 실천이 이와 함께 (인애와) 동반되어야 헷세드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인애(사랑) 하였는가? 단순히 측은하게 여기고, 긍휼히 여긴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보내 죽기까지 우리들에게 헷세드를 보여주셨다. 로만으로는 사랑을 실천하기에 부족했다. 인애 (헷세드-히브리어)라는 표현을 예수 그리스도 역시 신약 (엘레오스-헬라어) 에서 사용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인애(헷세드) 어떻게 신약에서 표현하셨는지 살펴보자. 예수님은 호세아서를 인용하여 헷세드를 바리새인들 앞에서 사용하였다.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 (Eleos – 헷세드와 유사한 Greek 원어)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Eleos 또한 Mercy로 표현되어 있다

 

예수님 당시 율법에는 죄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금지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과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었고, 이를 바리새인들은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태복음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있느니라.

 

이것이 바로 인애(헷세드)이다. 병든 자를 보고 측은하게 여기면 헷세드의 반쪽만을 이룬 것이다. 병든 자에게 가서 의사가 되어주는 것이 헷세드를 완성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실천적 (진정한) 사랑인가?

사랑의 행위가 상대에게 유익이 되어야 한다. 내가 표현하는 사랑이 남에게 해가 되면 그것은 실천적 사랑이 없다. 사랑은 상대에게 유익이 되도록 행해야 한다.

 

호세아 시대의 제사장들은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들이 행한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자.

 

호세아6:8-9 (도피성 - 길르앗과 세겜)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발자취가 편만하도다 9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이스라엘에는 6개의 도피성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였을 도피성으로 들어가서 죽음을 면할 있었다. 마땅히 죽어야 자가 도피성으로만 피하면 죽음을 면하였다. 도피성의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성에 있던 죄인들은 자동으로 풀려났다.

 

6개의 도피성. 그리고 도피성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도피성은 구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다. 마땅히 죽어야 죄인이 그의 안에 있으면 죄가 그를 벌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세겜과 길르앗,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도피성에 살인자가 들어오기 전에 대제사장들은 이들을 죽여버렸던 것이다.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죄인들을 돈을 받고 팔거나, 미리 죽여버리는 사악한 행위를 것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대제사장들의 마음의 중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들은 도피성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도피성에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조차 들어가게 막았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고 있는 인애 (헷세드) 바로 이해했는가? 우리는 깊게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지만, 진정한 헷세드를 이해할 있을 것이다.

 

Rivers of Babylon 그리스도가 중심이 아닌, 송아지가 중심, 아니 자신이 예배의 중심이 되었을 어떻게 망하게 되는지 한탄하는 노래이다. 호세아의 경고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번제가 아닌 인애로 그리스도를 예배해야 한다.

 

위의 포스팅은 한몸교회 이수용 목사의 설교를 나의 버전으로 요약한 것임을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