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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참 포도나무 vs 포도나무 (ft. 참 - True는 오직 예수)

요한복음 15장에는 포도나무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냥 포도나무가 아닌, 포도나무 이다. 포도나무는 무엇이고, 그냥 포도나무는 무엇인가?

15:1 나는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라
15: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15:1 I am the true vine, and my Father is the gardener.
15:2 He cuts off every branch in me that bears no fruit, while every branch that does bear fruit he prunes so that it will be even more fruitful.

 

포도나무를 다루기 전에, 예수님의 대화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자. 요한복음 15장에서 17장까지에서는 예수님과 제자들만의 특별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설명한다. 특별히, 장면은 고별 설교라고 생각하면 된다. 요한복음 13-16장을 다른 표현으로 다락방 강화라고 말한다. 만약 내가 땅에서 마지막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비롯해서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분명 조목 조목 이야기 것이다. 포도나무는 예수님의 고별 인사를 시작할 가장 첫번째 나오는 비유이다. , 예수님께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이야기 하신 것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포도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 포도나무를 의인화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시편 80 8

주께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

 

 

시편 80 14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이전 포스팅에서 열매를 맺는 텅빈(?) 포도 나무에 대해 자세히 다룬 적이 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empty vine (텅빈 포도나무)라고 표현하였고, 이와 함께 prosperous / spreading (무성한) 이라는 표현을 호세아 10 1절에서 사용하였다. 텅빈과 무성한은 완전히 다른 의미인데, KJV NKJ 텅빈이라고 하였고, NIV NAS 무성한 풍성한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럴까?

 

 

열매 맺는 텅빈 포도 나무?

호세아 10:1 에서 사용된 “무성한”이라는 단어는 KJV 그리고 NKJ을 제외한 모든 번역에서luxuriant (풍성한)의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개역 한글, 개역 개정, 표준 새번역에는 “무성한”으로 번역되

washington.doniq.net

 

호세아 10 1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열매가 많을수록 (우상의) 제단을 많게 하며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우상) 아름답게 하도다

 

번성하고, 풍성할수록. 돈을 많이 벌고 윤택해질수록 열매를 많이 맺는데, 텅 비어있다는 것이다.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건져내어 구원하여 번성케 하였더니 결국 자신들이 잘나서 부자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무성한 포도나무가 텅빈 포도나무가 되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예레미야 2 21

내가 너를 순전한 종자 귀한 포도나무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예레미아는 이스라엘을 종자, 그것도 순전한 종자라고 표현하였지만, 결국 이방 포도나무가 되었다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계속하신 포도나무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타락한 포도나무를 다시 재건하는데, 이때 바로 예수님이 자신을 포도나무라 말한다. 이스라엘은 본질에서 벗어났지만, 원래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계획하신 것은 포도나무라 말하면서 자신을 참포도나무라 칭하신다. 결국 우리 인간 자신은 포도나무가 없고, 그리스도만이 오직 포도나무가 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포도나무가 되라고 다시 말하지 않는다. 감람나무가 되라고도 하지 않는다. 단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라 요구하신다. 그것이 우리가 살길이요. 그 이외 것으로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말씀하시고 계신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안에, 내가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어도 텅비어있다는 것이다. 뭔가 많이 맺혀 있어도 악한 포도나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우리의 싸움은 열매를 더 많이 맺는 싸움이 아니다. 먹을직한 포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면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내가 맺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열매가 아닌, 어디에 붙어 있냐에 싸움이다.

 

 

이 포스팅은 한몸 교회 이수용 목사의 설교를 내 버전으로 해석했음을 알려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