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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풍성한 삶의 기초 세번째 만남 - 하나님 알아가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자녀된 자들의 특권이다. 혹자는 때가 되어 하나님을 느끼게 되면, 그때 가서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의 귀로에 서게 된다. 나는 하나님을 수동적으로 내가 느껴질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나는 적극적으로 그 분을 찾을 것인가?

 

하나님 알아가기

1. 그리스도 안에 속하기 전의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처음 알게 되었을때 우리는 고아가 친부모를 만났다는 표현을 한다. 부모를 만난 것만으로도 감개무량이지만, 가장 큰 특권을 누리는 것은 부모와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란 아이와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가진 부모일 것이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기쁨을 함께 하며, 생각과 느낌을 공감하는 것이 부모의 가장 큰 기쁨일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은 원래 이러한 관계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관계는 죄를 통해서 이제 깨어지게 되었다. 

 

 

성경은 죄로 인해서 단절된 우리의 상태를 진노 아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의 진노는 단순히 화가 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주의 정의가 부인되었을때,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가 뒤틀렸을 때의 의로운 분노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거룩한 분노를 인식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러한 고독과 허무함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은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나선다. 좋은 직장과 성공, 멋진 이성과 돈, 그리고 취미와 예술 등으로 우리의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우며 살아간다. 이러한 것들에서 최고의 자리에 이른 사람들의 고백이 왜 한결같이 허무한지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더 열심히 다른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그 이외에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인가에 미쳐 살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를 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케 하고, 우리에게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길을 여셨다는 것을 단 한번 이해하고 마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죄성이 우리의 마음과 의식에 노크할때 마다 우리는 이 구원의 카드를 열어서 다시 십자가를 묵상해야 한다.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

 

 

워크북 56 페이지의 2번째 질문을 우리가 조금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믿음의  영역 (1:17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나니)에서 첫번째 믿음은 우리에게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두번째 만남에서 이미 다루었다. , 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을 , 그리스도께서 일방적으로 나에게 오신 , 이것이 첫번째 믿음이다. 이것을 칭의라고 부르며 구원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노력과 행위는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3:36  같은 구절이 우리를 헷갈리게 한다.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 행위가 구원과 관계가 있다는 억양으로 들린다. 그래서 신인협력설  믿음도 있어야 하지만, 우리의 행위도 함께 따라야 한다는 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성경 번역은 조금 못되었다. 성경의 여러 버전으로 이를 해석해보자. 

 

개역한글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쉬운성경

3:36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생이 있지만, 아들을 거역하는 사람은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그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다.

 

표준새번역

3:36 아들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는 도리어 하나님의 분노를 산다.

 

KJV

3:36 He that believeth on the Son hath everlasting life: and he that believeth not the Son sha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abideth on him.

 

NASB

3:36 He who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but he who does not obey the Son will not see life, but the wrath of God abides on him.

 

NIV

3:36 Whoever believes in the Son has eternal life, but whoever rejects the Son will not see life, for God`s wrath remains on him.

 

 Apeithes 라는 표현 안에는 불순종이라는 뜻이 있지만, 거기에 더해 불신, 믿지 않는다 라는 표현도 있다. , 행위로 인한 불순종으로 인해서 영생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서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문맥상으로 요한복음 3:16 에서 믿음에 대해서 말하다가 갑자기 요한복음3:36 이어지면서 행위를 강조하는 순종으로 바뀐다면 이는 분명 앞뒤가 맞지 않는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3:16에는 누구든지 그에게 순종하면 이라고 하지 않았다.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이라고 분명 성경은 말하고 있다. 또한 3:18에도 동일하게, 믿음을 요구하였지, 행동인 순종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3: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 그것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흥정역 번역에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않는 생명을 보지 못하며라고 정확히 번역이 되어 있다.

 

4:5-6 (표준새번역) 또한 이러한 잘못된 번역이 있다.

 

4:5 곳에서는 그는 다시 그들은 결코 안식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4:6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기쁜 소식을 먼저 들은 사람들은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들어갈 없었습니다.

 

KJV에는 이를 정확히 불신, 믿지 않음이라 표현하고 있다.

4:5 And in this place again, If they shall enter into my rest.
4:6 Seeing therefore it remaineth that some must enter therein, and they to whom it was first preached entered not in because of unbelief:

 

요한복음 3장 36절의 불순종의 해석을 정확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풍성한 삶을 누리기 위해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저주 받지 않기 위해서 순종하는 즉, 짓눌림을 받는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수용 목사

 

 

 

2.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롬5:10-11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우리는 지금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정확한 표현으로는 누군가가 내가 죽어야 할 사형대에서 대신 손을 들고 나와 죽어준 사건이 나와 하나님과의 원수 관계를 끊을 수 있게 해주었다. 로마서의 표현은 그로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본다. 많은 기억들이 있었고, 나이가 들어 아이를 키우다보니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기억들이 많다. 심지어 이를 닦다 우연히 다시 보게된 금으로 싸인 어금니를 보고 아버지께 감사했다. 이러한 세심한 배려로 내 인생의 큰 기둥이 되어주신 아버지가 나는 자랑스럽다. 

 

 

육신의 아버지도 자랑스러운데, 우리는 하나님 자랑에 인색하지 않은가 한번 생각해본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를 느끼기 어려울수도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부정적인 아버지 상을 잠시 내려놓고, 더 넓고 깊은 그 분의 사랑을 체험하길 소망한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후에도 우리는 죄에 빠질 수 있다. 간혹 회개해야만 죄가 없어진다는 말들을 듣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얻은 죄씻음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죄까지 덮는다는 사실과 정반대로 이해한 것이다. 회개는 구원받은 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만, 회개 자체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지 않는다. 

 

 

"용서의 효력은 우리의 회개 기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에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책감에 시달리지 마십시오." - 김형국 목사

 

 

 

3.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하는 보고: 성경

한국은 유교 사상이 깊이 뿌리 내려있는 나라이다. 특별히, 전통적인 아버지상은 근엄하며, 침묵하는 것이 우리가 이해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렵게 여긴다. 하지만, 하늘의 아버지는 이 땅의 불완전한 아버지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모습과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아버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한 최고급 정보가 담겨 있는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기 전에는 구약이라는 책을 통해서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글이라는 수단으로 완벽히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자신의 눈높이를 인간의 눈높이까지 낮춰주셨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다. 실제 예수는 이 땅에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고난을 받으셨다. 그렇기에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가 결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그 분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조롱받았고,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누명을 받았으며, 아무런 죄없이 채찍질 당하고, 부끄러움의 극치인 옷도 벗김을 당하였으며,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고의 악인들만 받는 십자가형을 당하셨다. 

 

 

성경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다. 또한 성경을 통해, 아버지를 배워갈 수 있으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와 소통하신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밟혀냅니다."

 

 

"우리가 세상을 누릴 수 있는 힘은 성경에서 옵니다." - 이수용 목사

 

4. 말씀으로 자녀의 특권 누리기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Teaching)책망(Reproof)바르게 함(Correction)의로 교육(Training in righteousness)하기에 유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유능하게 하고 그에게 온갖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교훈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준다. 책망은 우리가 어디서 길을 벗어났는지 말해주며, 바르게 함은 다시 정상 궤도로 갈 수 있도록 가르쳐준다. 의로 교육함으로써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 길을 갈 수 있게 한다. 이것이 성경이 가진 힘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 기억해야 것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을 계속 그리면서 성화의 과정을 걸어가는 것이다. 

 

네비게이터 선교회가 사용하는 딤후3:16-17

 

마지막으로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의무가 아니고, 특권임을 기억하자. 의무적으로 말씀 읽기도 물론 신앙생활에 도움은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기 보다, 호기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자극하여, 자녀된 자로서의 특권이 성경읽기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이 포스팅은 김형국 목사의 풍성한 삶의 기초 (비아토르)의 책과 이수용 목사의 일대일 제자 양육을 참조하였음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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