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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풍성한 삶의 기초 두번째 만남 - 성경적 믿음의 원리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인생에서 배운 교훈들로 인해 우리는 인격이 성숙한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 또한 성령님을 더욱 체험하고, 말씀의 묵상이 깊어지면 우리의 영적 성숙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고 열매도 없고, 생명력도 없는 상태가 왜 지속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중 무엇을 꺼내 써야할지 모르거나,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째 만남은 믿음이라는 선물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더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한다.


성경적 믿음의 원리

1.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축복을 누리는 열쇠

인간의 행위로 얼마만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가? 성경은 이에 대한 해답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롬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롬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자도 없고
롬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선을 행하는 자가 소수의 인원이라 얘기하고 있지 않다. 하나도 없다라고 이야기 한다.

시편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잇다.

시14: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시14:3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선의 기준과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선의 기준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성경에서의 절대적인 선은 단 하나,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즉, 내가 이제부터 착하게 살아야지 하며 살아도 이것은 절대 선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선함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야 한다.


2. 은혜와 믿음 & 3.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


나는 무엇인가를 믿는다. 여기에서 "믿다"는 동사이며, 이는 행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일방적으로 우리의 구원을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셨다라고도 한다. (Unconditional Election: 무조건적 선택)

그렇다면 믿는다는 행위조건없는 구원은 상반된 개념이 아닌가? 과연 무엇이 옳은가 고민해 보았는가? 이 두 표현에서 우리가 혼동되는 이유는 믿음에는 두 영역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수용 목사의 믿음에 대한 설교를 참조하려고 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1)믿음으로 (2)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첫번째 믿음을 통해서 두번째 믿음에 이르게 한다. 앞의 (1)믿음이라는 단어는 방법으로 쓰였고, 뒤의 (2)믿음목적지로 사용되었다.

첫번째 믿음의 의미하나님이 나에게 선물로 주시는 구원의 총체적 표현의 믿음을 의미한다. 이것을 칭의라고도 하며 아래 이수용 목사의 도표를 참조하면 우리가 인생길을 아무런 생각없이 가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위에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내가 죄인되었을 때 아무런 조건과 선한 행위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은혜를 의미한다. 이를 칭의 (Justification)라고 하며, 이것은 내가 의로워지려고 노력해서 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나를 하나님께서 칭해주었다는 의미이다.

칭의, 성화, 영화의 표현 - 이수용 목사의 표에서 인용


에베소서에서 의미하는 믿음이 바로 이 첫번째 믿음을 의미한다. 이 믿음은 내 노력과 결단에 의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이때의 믿음은 율법과 상반된 단어라 생각하면 된다.

엡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두번째의 믿음은 내 노력과 결단, 그리고 행위를 의미한다. 즉, 구원받은 자들이 살아가야 할 이 땅의 거룩하고 순결한 삶의 과정 속에서 필요한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하는 것 바로 성화 (Scantification)을 의미한다.


이제 다음 구절의 믿음은 첫번째 혹은 두번째 믿음에 속하는지 구별해보자.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By faith Abraham obeyed...)


우리가 생각했을 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상이 들끓던 우르라는 지역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 (칭의)를 받았던 것은 전적인 첫번째 믿음으로 인해서 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간혹 몇살에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했다고 말하곤 한다. 사실 이 몇살은 인식의 순서 (부르심의 시점) 이지, 사실의 순서는 아니다. 사실의 순서는 우리가 태어나기 전, 창세전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아래 표 중에서 칭의 (Justification)을 자세히 보면 이것은 위에서부터 전적으로 부어주는 은혜를 (화살표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옴) 체험하는 순간이다. 이것은 어떠한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부어지는 은혜가 아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길을 걸어가다 만나는 믿음이다. 그것이 첫번째 에베소서 2:8절에서 말하고 있는 첫번째 믿음이다.

칭의, 성화, 영화의 표현 - 이수용 목사의 표에서 인용

4. 믿음으로 사는 삶의 원리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것을 이 책에서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전인격적인 반응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분이 하신 일들을 우리는 직접적으로 눈으로 볼 수 없다. 우리 인간은 눈을 비롯한 오감을 통해서 우리의 인식의 세계를 넓혀 나간다. 그런데, 오감이 아닌 다른 영역을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7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후5:7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

성경은 보는 것과 믿음을 상반된 영역이라 표현한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아갈때 전인격적인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눈에 의지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우리의 느낌에 치중하지 말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이를 By sight vs By faith라고 표현한다. 처음 질문하였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 그리고 하실 일들을 믿는 것이다. 우리의 느낌이 아닌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그 분은 신실하게 지키신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론들은 우리의 감정과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느낌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느낌을 완전 배제하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또한 이러한 느낌 역시 신앙인에게 필요하다. 단지, 우리의 느낌만으로는 믿음에 도달할 수 없고,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을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고, 나의 인생의 문제가 너무나 크게 다가와 하나님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때 그 눌려진 느낌을 인정하되, 그 느낌에게 굴복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 분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그 사실에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정해야 한다.


성경에서 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자신의 조상들을 들먹이며 기도를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단순히 한가지를 말하자면 바로 이렇다. 하나님, 당신은 우리의 조상들과 약속했잖아요. 그리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이시잖아요. 나는 그러한 약속에 근거해서 행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압니다. 이 약속은 내 감정과 전혀 관계가 없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바를 잘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의 시각과 경험의 시각, 우리에게는 이 두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중에서 믿음의 시각을 택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 김형국 목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무슨 약속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성경을 통해서만 알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느낌과 믿음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가? 이를 CCC의 3F 증기 기관차 그림을 통해서 살펴보자. 이 그림에서 기관차는 Fact (사실), 석탄차는 Faith (믿음), 그리고 Feeling (느낌)은 객차라고 할 수 있다. 기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관차가 없으면 안된다. 기관차가 어디로 향해 가는지도 결정한다. 이때 이 기관차가 달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석탄 즉, 연료인 믿음이다. 바로 믿음은 사실에 근거해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이 느낌, 바로 체험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때 우리는 그것을 체험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CCC 3F (Fact, Faith, Feeling)


오늘 혹시 낙심하여 넘어져 있다면, 우리의 느낌과 체험이 위의 그림에서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길 바란다.



이 포스팅은 김형국 목사의 풍성한 삶의 기초 (비아토르)의 책과 이수용 목사의 일대일 제자 양육을 참조하였음을 알려드린다.


세번째 만남은 하나님 알아가기 이다.

풍성한 삶의 기초 세번째 만남 - 하나님 알아가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자녀된 자들의 특권이다. 혹자는 때가 되어 하나님을 느끼게 되면, 그때 가서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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