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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우연이 자주 일어나면 그것은 계획된 것이다?

우연이 계속 일어나면 이것들은 계획된 필연인가? 영어로 "Wishing You Luck" 잘 되길 바래 라는 표현있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우연이 일어나길 바랄 때 흔히 사용된다. 

 

 

성경에서의 우연? 아니 마침!

 

내가 사람의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I led them with cords of human kindness)

 

하나님의 방법은 많은 경우 사람 동반한다. 호세아11:4 나오는 사람의 줄이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해서 그의 계획을 이뤄 가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에게 일어나는 우연 사건들을 해석할 있는 믿음의 지혜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성경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일에 잘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마침이라는 단어이다.

 

2:3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2:4 And, behold, Boaz came from Bethlehem, and said unto the reapers, The LORD be with you. And they answered him, The LORD bless thee.

 

 

여기에 나오는 Behold 라는 감탄사 히브리어로 hin neh 라고 하는데, 뜻은 우와 저것 이렇게 해석할 있다. , 우연히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갔다. 그런데, 마침 ( 우와 이럴수가!) 보아스도 거기에 있었다.

이러한 우연을 가장한 마침은 성경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17:23 그들과 함께 말할 때에 마침 블레셋 사람의 싸움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 하는 자가 항오에서 나와서 전과 같은 말을 하매 다윗이 들으니라

 

형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해주러 다윗은 마침 골리앗이 이스라엘 백성을 모욕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버지의 심부름은 우연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줄이었던 것이다.

 

KJV 에는 동일한 behold 표현되어 있다.

17:23 And as he talked with them, behold, there came up the champion, the Philistine of Gath, Goliath by name, out of the armies of the Philistines, and spake according to the same words: and David heard them.

 

이때 동일한 hin neh 라는 감탄사를 찾아볼 있다. , 다윗은 생각없이 아버지의 심부름을 갔고 (하나님의 ), 마침 그곳에 골리앗은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모욕했다. 성경에서는 이를 우와! 저것 ! 마침 골리앗이 나타났고, 다윗도 도시락을 전달하러 왔어!  

 

 

마침우와 저것 ! 감탄사는 신약에서도 등장한다. 베드로가 환상을 보는데, 환상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마침 누군가가 베드로를 찾아온다.

 

10:17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밖에 서서

 

사용된 헬라어가 idou 라는 단어인데, 이것이 히브리어의 hin neh 동일한 감탄사이다 .

 

 

 

성경에서는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마침이 너무도 많이 등장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우연의 ,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는 방법에 나도 마침이라고 반응하고 있는가? 나에게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을 성경에서는 마침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셨다로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사람들을 통해, “마침 인식해야 한다. 우와 이것 봐! 마침 그 때 우연하게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었어.  이 때 우리의 마침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확히 이야기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은 누구를 의미하는가?

 

호세아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호세아 11장은 아비가 사랑하는 아들에게  편지와 같다. 자식을 낳아보고 길러본 부모라면 한가지 이해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랑만으로 자식을 훈육할  없다는 점이다. 호세아 11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함과 동시에 곁길로 가는 자식을 보는 부모의 안타까움이 드러난 구절들이 많다.

 

어찌 버리겠느냐

어찌 놓겠느냐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호세아서 1절에 등장하는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랑한 대상, 이스라엘을 아들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아들은 2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  첫번째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가리키고 있다.

 

마태복음 2 13-14절을 살펴보자.

 

2:13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2: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2: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애굽으로부터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특별히 마태복음 2 15절에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라고 호세아서를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이라 표현하고 있다.

 

아들이 의미하는 것이 한가지  있다. 바로 신약 시대의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호세아11: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에서 돌아온다는 표현을 성경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스라엘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돌아왔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찾을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포로귀환은  유다 백성들이 바빌론에게 잡혀갔던 것이지,  이스라엘 포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호세아 11: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0절에는 더구나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돌아온다고 말하고 있다. 앗수르는 예루살렘을 기준으로 북동쪽에 위치해 있기에 뭔가 석연치 않은 것이 있다.

 

여기에서 서쪽에서 돌아온다는 그들은 신약 시대의 교회를 뜻하고 있다. 특별히 바울이 선교한 구브로, 갈라디아, 아시아, 데살로니가, 고린도, 로마의 위치는 예루살렘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해 있다. , 하나님이 사랑하는 대상은 이스라엘,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신약의 교회,  지금의 우리를 포함하고 있다.

 

 

구약의 사랑하는 아들은 바로 우리 자신을 이야기 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사랑한다고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러한 하나님으로 인해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마다 마침! 이라고 외치길 소망한다. 

 

 

이 포스팅은 한몸 교회 이수용 목사의 설교를 나의 버전으로 해석했음을 알려드린다. 

https://youtu.be/Q8qISsmsxX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