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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다윗을 두려워한 골리앗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내면 세계에 있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과 재능보다 내면에 있는 나의 마음을 더 중하게 여기신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용기란 과연 무엇인가?

성경적 용기란 위기 속에서도 진리를 향해 가는 결단을 의미한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깡이 좋은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미국에 거주하는 조디 스미스라는 사람은 편도체를 제거함으로써 일종의 공포를 없앨 수 있었다. 그는 신경질환이 있었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항상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삼킬 정도로 심각했다. 하지만, 뜻밖의 수술로 인해서 그는 편도체를 뇌에서 제거하였고, 이로 인해 적어도 생리학적 관점에서 두려움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 만일 우리 주위에 이렇게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보통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용기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용기가 두려움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정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바로 이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이다. 아브람은 자신의 고향을 떠날 수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할 때, 이를 위해 쓰임 받고 싶지 않았었다. 에스더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갔다. 모든 믿음의 선배들에게 두려움이 있었다. 그들은 두려움이 있음에도 두려움을 극복했던 것이다.

우리가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 쟁취해야 일은 타인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안의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두려운 상황을 맞이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에게 크나큰 두려움의 상대였음에 틀림없다. 오늘은 큰 두려움을 이스라엘 군대에게 안겨준 골리앗과 그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싸움에 임한 다윗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교훈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참된 용기를 가질 있는지 알아보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우리는 참된 용기를 가질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감추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거인이었다. 3미터가 넘는 거구 앞에서 어느 누구도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우리가 알아야 진실이 있다.


한 사람은 두려움을 이겨냈고, 다른 한 사람은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다윗이었고, 두려워했던 사람은 골리앗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골리앗이 두려워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가 두려워했다는 증거들을 성경에서 찾을 있다.

사무엘상 17:5 KRV

머리에는 놋투구 썼고 몸에는 어린갑을 입었으니 갑옷의 중수가 오천 세겔이며
He had a bronze helmet on his head and wore a coat of scale armor of bronze weighing five thousand shekels[

거인 골리앗이 몸에 두른 갑옷은 오천 세겔, 57Kg(125lb) 해당된다. 육군의 경우 완전 군장의 무게가 36Kg이라고 하니, 군장 1 반이나 되는 동을 자신의 몸에 둘러, 방어를 것이다. 그가 입은 갑옷은 적으로부터 날아오는 화살과 공격해오는 칼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즉, 자신의 방패와 칼로 방어할 수 없는 공격에 대해 두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그는 어깨 사이와 다리도 없는 공격을 막기 위해서 놋을 몸에 둘렀다.

골리앗은 이스라엘 군대를 향해 큰소리 외치고 있다. “나하고 누가 한판 붙어볼래?” 골리앗은 일대일 맞짱을 뜨자고 이스라엘 군대를 요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온몸을 갑옷으로 둘렀고, 두려움으로 인해 크게 소리쳐 이스라엘 군대에게 두렵지 않은 했을 뿐이다. 골리앗은 이미 3미터가 넘는 거인이었다. 그가 두려움이 없었다면 일대일 맞짱뜨기에 이러한 갑옷과 엄청난 무기는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골리앗이 가진 칼은 육백 세겔, 7kg 해당된다. 거기에서 모자라, 그는 방패든 자를 자기 앞에 세웠다. 그는 분명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다. 사무엘상은 아래와 같이 이를 말하고 있다.



6 그의 다리에는 각반을 쳤고 어깨 사이에는 단창을 메었으니
7 자루는 베틀 같고 날은 육백 세겔이며 방패 자가 앞서 행하더라
8 그가 서서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외쳐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서 전열을 벌였느냐 나는 블레셋 사람이 아니며 너희는 사울의 신복이 아니냐 너희는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9 그가 나와 싸워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만일 내가 이겨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의 종이 되어 우리를 섬길 것이니라
10 블레셋 사람이 이르되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와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
11 사울과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골리앗은 철저하게 무장을 했는가? 골리앗은 외적으로는 거인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소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내면이 약한 자는 자신을 나약함을 가리기 위해서 더 크게 외쳐되는데, 바로 골리앗이 그렇게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며, 자신의 약함을 가렸던 것이다. 골리앗은 물맷돌 5개를 가지고, 무장도 하지 않은 다윗을 보며 분명 당황스러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골리앗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성경은 골리앗이 다윗을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자신이 생각했던 용사와 전혀 다른 용모의 사람이 등장함에 황당하고, 놀랐던 것이다. 골리앗은 다윗이 자신이 알고 있던 싸움꾼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사울 왕은 골리앗이 무서워 싸움에 나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용기 있는 다윗을 위해 자신의 군복과 투구 그리고 갑옷을 입혔다.

38 이에 사울이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투구를 그의 머리에 씌우고 그에게 갑옷을 입히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벗고
40 손에 막대기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다윗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알았다. 안의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다윗이 익숙하지 못했다는 것은 포장된 자신의 모습이 싫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에게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나를 가짜로 포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짜를 통해서는 절대 승리할 수 없음을 그는 알았다. 다윗의 가장 자기다운 모습은 목동이었다. 목동의 모습은 막대기와 돌팔매질이었다. 자기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으로 싸움에 임했다. 다윗이 가진 그대로의 모습, 용기가 골리앗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것이다.


만일 내가 지금 두렵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자. 나를 포장하지 말고,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을 깊이 우리는 참된 용기를 가질 있다

진정한 용기는 우리가 하나님을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인간의 뇌에 대한 사실이다. 우리의 뇌는 정보를 항시 필요로 한다. 우리가 불안함, 또는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뇌가 어떤 상황에 대해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을 감고 10미터 정도 걸어간다고 생각해보자. 눈을 감고 걸어갈 때 뇌가 가진 정보는 내가 인식했던 거리 만큼이다. 눈으로 인식한 거리까지 뇌는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거리 이상으로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 뇌에 아무런 정보가 없기에 우리는 눈을 감으며 걸을때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을 감고 걸어갈 때, 10미터 정도쯤 되면 이제 눈으로부터 받은 정보는 바닥이 난다. 아무런 정보를 받을 수 없기에 손과 발을 이용해서 조심스레 눈을 감은 체로 우리는 걷게 된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우리로 하여금 추가적인 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두려운 감정은 우리로 하여금 특정 상황 가운데, 특정 행동을 (위기를 모면) 촉발시키기 위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일어날 , 상황에 맞는 행동이 미리 준비되어 있으면 과도한 감정의 개입이 사라져버린다. 이러한 맥락에서 때, 우리 믿는 자들이 삶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온전히 맡긴다는 정보가 우리 뇌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생에 전적으로 개입하여, 힘과 노력으로 해결할 없는 일들을 돌보신다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의 아버지 되시고, 도움이 되신다는 것은 머리로 깨닫는 것이 아니다. 내가 실제 경험을 해서 뇌에 각인을 시키는 것이다.

다윗이 3미터가 넘는 골리앗을 보았을 , 그의 뇌에는 어떤 내용이 각인되어 있었을까? 그는 곰도 이겨보았고, 사자와도 싸워보았다. 그의 뇌에는 이미 충분한 정보가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고, 어려움에서 자신을 구원하실 것을 그는 이미 인생 가운데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다윗의 뇌에 이미 각인까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윗이 가진 정보는 사울 왕이 허락한 그의 갑옷을 그로 하여금 필요치 않게 만들었다.


다윗이 싸움을 시작하기 전, 그가 확신한 것이 있다. 바로 여호와께서 자신을 건져내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냐 아니냐의 싸움이지, 어떤 것도 싸움의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윗은 이미 알고 있었다.

37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다윗의 인생은 참으로 다이내믹했다. 자기가 섬기는 왕이 직접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고, 도피 중에 죽음을 피하기 위해 미친 척도 했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쫓겨 왕위를 빼앗겨 보기도 하였고, 아들을 잃는 슬픔도 겪었다. 자신의 부하를 죽음으로 이르게 만들어 그 부하의 아내를 빼앗기도 하였다. 이러한 다윗이었지만, 그는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 이외에는 자신이 기댈 곳이 없다고. 다윗은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눴었다. 다윗의 뇌는 하나님을 정확히 각인하고 있었다.

참된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그린 그림들의 대부분이 다윗을 굉장히 작은 소년으로 묘사하고 있다. 많은 그림들이 다윗을 귀엽고, 작은 소년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다윗의 나이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소년처럼 어리지 않았다. 성경의 정황상 다윗은 16-19 정도가 아닐까 생각이 된다. 다윗이 전쟁에 나가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20살이 안되었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즉, 다윗은 현재의 고등학생 나이에 해당되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다. 사무엘상 17:39을 다시 보면 다윗이 사울의 군복을 입을 때 군복이 커서 라고 적혀있지 않았다. 성경에는 다윗이 익숙하지 못하므로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크고, 작음의 의미가 아니라, 그에게 불편하다는 의미이다.

39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벗고


David fastened on his sword over the tunic and tried walking around, because he was not used to them.
“I cannot go in these,” he said to Saul, “because I am not used to them.” So he took them off.

다윗이 골리앗에게 던진 물맷돌은 골리앗의 이마를 맞힌 정도가 아니다. 그의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박혔다. 초등학생이 돌을 던져서 정확히 사람의 이마를 맞힐 수는 있겠지만, 이마에 박힐 정도의 힘은 없다. 이마에 박힐 정도의 힘을 가지려면 적어도 다윗의 나이가 16살 이상이라고 우리는 추측할 수 있다.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49 Reaching into his bag and taking out a stone, he slung it and struck the Philistine on the forehead. The stone sank into his forehead, and he fell facedown on the ground

이런 정황으로 보았을 때, 다윗이 물맷돌 5개를 가지고 싸움터에 나간 것은 적어도 어린 아이의 객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즉 자신감을 가진 목동이었고, 그 자신감은 꾸준한 자신의 훈련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다윗이 가진 것은 단순한 하나님에 대한 신뢰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 곰과 사자를 필드에서 이겨본 용사였던 것이다. 다윗은 돌 5개를 준비했지만, 그가 사용한 것은 첫번째 돌 하나였다. 그만큼 정말 노력하여서 돌팔매를 정확하게 마스터했다는 의미이다. 그는 한방에 골리앗을 해치웠고, 결정타 역시 미간을 빗나가지 않았다. 그의 보이지 않는 연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연습을 통해서 자신감도 있었고, 또한 곰과 사자 역시 필드에서 잡아보았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모든 것의 정보가 다윗으로 하여금 골리앗 앞에서 용기를 갖게 것이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러한 훈련이 필요함을 잊지 말자.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없애주시는 장벽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있는 두려움을 우리에게 있는 은사와 능력으로 훈련하면서 나아가야 진정한 의미에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끊임없이 해봐야한다. 그래서, 뇌가 경험을 각인시켜야 한다.

갈렙의 나이 80이 되었을 때를 기억하자. 그는 자신의 늙음이 싸움에서 패배한다는 이유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지가 싸움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다는 믿음까지 용기와 함께 가지고 있었다.

오늘 나에게 골리앗은 어떤 것인가? 가정과 직장, 그리고 경제적, 신체적 문제인가? 우리에게는 두려움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두려움을 포장하지 않고, 맞서 싸울 때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은 결국 우리에게 포장되어 오는 축복임을 잊지말자. 그 축복은 바로 그러한 경험으로 인해 하나님을 우리의 뇌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한몸교회 이수용 목사의 설교를 나의 버전으로 옮긴 것임으로 알려드린다.